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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영재코스' 설치… 별도기준 신입생 뽑아야"

세계는 영재를 ‘인류의 자산’으로 키우고 있다. 하지만 영재란 극소수의 천재가 아니라 누구도 한계를 긋기 어려운 잠재력의 소유자다. 10회에 걸쳐 연재된 ‘세계의 과학영재 이렇게 키운다’시리즈는 선진국의 체계적 영재교육이 무한한 가능성을 싹 틔우는데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입시에 찌들려 재능을 잃을지 모를 수많은 영재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한국의 영재교육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전문가와 학부모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_최근 국내 첫 영재학교인 부산과학영재학교가 문을 열고, 영재교육진흥법이 시행됐습니다. 범정부 차원의 영재교육이 본격화한 것인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조석희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실장 우리나라는 1983년부터 과학고가 세워졌지만 내용적으로 창의적 전문가를 키워내는 교육은 못했습니다. 외국에서 국가적으로 영재교육에 나서던 1970년대 후반 우리는 거꾸로 평준화 교육을 시작했어요. 이제부터라도 이름뿐 아니라 실제로 창의적 영재를 키워야합니다.

▦박인호(인천대 과학영재교육센터장) 교수 지식정보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도 비로소 창의적 인재의 필요를 알게 된 것이죠. 늦었지만 굉장히 다행스럽습니다. 늦은 만큼 외국의 시행착오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윤정숙 부산과학영재학교 학부모회 대표 개인적으로 우리 아이가 시기를 잘 타고난 셈이죠. 학교를 둘러보니 대학 못지않은 기자재가 갖추어진 첨단과학관도 있고, 무엇보다 학교측 열의가 대단해 뿌듯했습니다.

▦조석희 실장 영재학교의 의미는 최신 시설, 설비보다 커리큘럼과 교육과정을 전적으로 학교자율로 보장했다는 겁니다.

_우리나라에서 영재교육이 뒤처지고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조 실장 기회는 적고 경쟁은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과거제도 이후 지필고사는 사회적 신분 상승의 핵심적 통로로 자리잡았습니다. 영재교육 역시 입시를 위한 고급과외 정도로 여겨져, 영재교육정책을 내놓기만 하면 맹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향하는 영재교육은 점수 높은 아이가 아니라 우리에게 닥친 과제를 해결해 줄 아이를 키우는 것입니다. 자신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짊어질 사람들이죠.

▦박 교수 영재에 대한 개념 자체에 오해가 많습니다. 흔히 가르칠 필요가 없을 만큼 천부적인 아이들, 또는 교사가 선호하는 수재를 영재라 여깁니다. 그러나 영재란 특정 영역에서 창의성이 뛰어나고 잠재력이 큰 아이로, 그 능력을 발휘하도록 육성하는 것이 영재교육입니다.

_대학입시와 무관하다면 영재교육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윤 대표 학부모 입장에선 이 점이 가장 큰 고민입니다. 합격하고도 불안해서 영재학교를 포기한 경우도 있습니다. 대학 갈 걱정 때문이죠.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 대학까지 잘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박 교수 지난 5년간 과학영재교육센터를 돌아보면 입시 압박으로 학원을 쫓아다니는 아이들은 못 견디고 떠납니다. 센터에선 성적과 관계없는 실험실습을 하니까요. 국제물리탐구토론대회(IPWT)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도 서울대를 못간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 학생은 2년만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졸업하고 유학가 입자물리를 연구하더군요. 과학자로서의 인생에 투자한 것입니다. 저는 그 학생이 머지않아 이름을 떨칠 것으로 믿습니다.

▦조 실장 성적이 떨어진다고 포기한다면 영재교육에 적합치 않은 학생입니다. 어차피 시험점수를 높이려는 교육이 아니니까요. 학교에서 안 배우는 과학연구를 한다고 좋아하는 아이만 잘 키워도 성공 아닐까요? 물론 좋아하는 공부가 원하는 대학과 일로 연계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요.

_영재를 살리려면 대입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조 실장 전체 학생을 모두 수준별로 구분해 제도를 뒤흔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영재를 따로 뽑도록 길을 트는 것이 필요할 뿐입니다. 예컨대 지필고사 중심이 아닌 문제해결 중심의 대회를 활성화하고, 대회 수상경력이나 연구논문 등 학생들의 산출물을 선발에 반영하는 식으로 기준을 조금만 보완하면 됩니다. 외국처럼 대학에도 영재 코스(Honor’s Class)를 따로 두어 별도의 선발기준을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2005년부터 대입전형이 자율화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박 교수 대학이 영재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분위기가 많이 바뀔 것으로 봅니다. 물리탐구토론대회, 학생탐구논문대회 등에서 실력을 발휘한 학생이 시험성적이 높은 학생들보다 실전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교수들이 목격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내에서도 이런 창의적인 학생들을 안 데려오면 손해라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윤 대표 그런데 어느 것이 공인된 경시대회인지 혼돈스러워요. ‘창의성’이 붙은 시험이 너무 많고, 해외에서 시험을 치르는 그럴듯한 국제대회조차 상술이 짙어 겁부터 납니다. 정작 대입에 반영되는 것은 몇 개 안 되구요. 대입전형이 10개월을 남겨두고 발표되는데 그동안 어떻게 대처하겠습니다. 중학생이면 적성을 파악하고 대강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데요. 보다 안정적으로 입시방향을 알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박 교수 사실 기존의 문제풀이 경시대회는 학원에서 만들어진 ‘문제 푸는 영재’로 빛이 바래는 실정이죠. 거창하지 않아도 새로운 문제를 학생 스스로 만들고 도전하는 문제해결 중심의 연구대회가 필요합니다.

▦조 실장 영재 전문가들은 “어린 아이도 전문가로 보라”고 합니다. 어린 과학자, 어린 예술가로서 진짜 전문가가 겪는 과정을 똑같이 겪게 하라는 거죠. 학교 우등생이 아니라 사회의 우등생이 되는 길입니다.

_이밖에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까.

▦박 교수 전문교사 양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창의적이고 튀는 아이들을 일반 학급에서 하듯 가르치려 들면 안 됩니다. 어떤 학부모들은 일류대 교수만 고집하는데 오히려 학생들과 밤새 연구하고 토론하기를 좋아하는, 자발적인 교사가 낫습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똑똑한 학생을 얻는 즐거움이 대단하죠.

▦윤 대표 영재교사 자격증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박 교수 그렇습니다. 일단 연수를 강화해야 합니다. 현행 60시간의 직무 연수로는 부족하고, 외국처럼 교사들이 대학원에서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고, 지속적으로 재교육, 후속교육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영재교사는 교육내용에 대한 수준도 높아야 하겠지만, 영재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조 실장 영재학교만이라도 교육공무원법에 준하지 않는 교사 임용 권한을 갖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현행 순환근무제는 교사들이 사명감을 갖고 영재 육성에 헌신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박 교수 이밖에 판별법, 교재, 교습법 등 교사가 다 할 수 없는 컨텐츠를 개발 제공하는 인프라가 절대 부족합니다. 교육부가 투자해야 합니다. 또 영재교육 대상이 확대돼야 합니다. 우리 센터의 사이버교육(http://www.geniinet.com)처럼 접근이 쉬운 도구가 필요하겠죠. 최근 연구는 초등학교 4학년을 기준으로 영재성이 상실되는 아동이 많다고 지적하는데 유아,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대상을 넓히는 것이 절실합니다.

­­_부산과학영재학교가 우리나라 영재교육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윤 대표 이기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제 바람은 이 학교만이라도 제대로 투자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으면 합니다.

▦조 실장 과학고처럼 16개 시도마다 영재학교를 세울 수는 없을 겁니다. 과학고의 위기도 서울 강남지역에 우수생이 몰리면서 비교내신제를 철폐하라는 압력에 굴한 것이 큰 이유입니다. 그러나 영재학교는 자기 학생만을 위한 학교가 아닙니다. IMSA처럼 지역 교육의 거점으로서 교육ㆍ평가ㆍ연수 방법 등을 연구, 시도하고 과학고나 일반학교에 보급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과학고도 교재와 시설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박 교수 영재학교의 선발제도, 사사제도, 전자교재, 실험설비 등을 공유함으로써 과학고를 견인하려는 정책이 과학기술부에 의해 추진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부산과학영재학교는 영재교육의 가이드 역할을 할 것이므로 전형, 교육, 교사연수의 효과성이 반드시 과학적으로 검증돼야 합니다.

_끝으로 우리나라 영재교육에 대한 전망과 당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박 교수 영재교육진흥법을 마련하고 영재학교를 입안한 관련자들이 뜨거운 관심과 열의를 갖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잘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공계의 위기가 사회 이슈화하면서 과기부가 영재학교 설립에 앞장서게 됐는데 어떻게 보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IMF환란때 나라를 건질 인재가 어디 있느냐는 문제의식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조 실장 부산영재학교가 새로운 모델로 뿌리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부와 사회의 전폭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사회의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뛰어난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일류대학 보내 돈 많이 벌도록 할 생각만 하면 국가의 미래는 없습니다. 또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영재를 질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먹여 살릴 인재’라고 보고 후원해야 합니다.

▦윤 대표 이제 저도 제 아이를 우리나라의 자식이라는 생각을 가져야겠습니다.

<참석자>

박인호 인천대 과학영재교육센터장ㆍ물리학과 교수

조석희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실장

윤정숙 부산과학영재학교 학부모회 대표

진행ㆍ정리=김희원기자 hee@hk.co.kr (한국일보A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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