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독일교육연구정보
지방대 어둡지만 실험실은 밝혀야죠 - 나노기술 세계적 권위 부산대 김복기 교수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내민 것은 엄지손톱만 한 얇은 종이였다. 타다 남은 재 부스러기처럼 보였다. 연구 성과물치고는 너무 소박했다.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종이입니다. 한국에서는 처음입니다.”

부산대 물리학과 김복기(金福基·33) 교수. 지난해 나노기술을 이용해 세계에서 가장 질긴 섬유를 개발해 주목을 끌었다. 관련 논문이 영국 ‘네이처’지에 실렸다. 지방대 연구진의 쾌거였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이공계 지방대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불안한 모습이었다.



실험실-위기의 확인



실험실에 먼저 들렀다. 학생들이 별로 없었다. 방학이라 당연하다 싶었다. 하지만 김 교수의 설명을 듣고 보니 사정이 달랐다.

“물리학과 교수가 31명입니다. 그런데 올해 대학원에 지원한 학생이 11명입니다. 작년에도 25명에 그쳤어요.”

제대로 된 실험을 하려면 교수 한 명에 석사지도학생(대학원생) 두 명은 있어야 한단다. 하지만 교수를 도와 줄 학생이 없어 실험이 중단된 게 지방대의 현실이었다.

“부산에 있는 모 대학원의 물리학과 석사과정에는 올해 단 4명이 지원했답니다. 그나마 부산대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요.”

인력만 충원되면 예전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김 교수는 그건 필요조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정부 연구용역 제안서를 쓴 기간만 6개월이나 됩니다. 10개를 제출해 3건만 성공했습니다. 그것도 1년짜리 단기 연구입니다.”

연구 용역을 못 따면 실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재(再)임용 때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현행 교수 평가 시스템을 설명한 것이다.

김 교수도 교수를 ‘성과’로 평가하는 데 이론(異論)이 없다. 하지만 모든 교수들이 단기 용역에 매달리는 성과주의와, 이에 따라 많은 시간이 걸리는 기초 연구는 엄두도 못 내는 현실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6월에 용역을 따면 자금 집행은 9월에나 가능합니다. 첫 3개월 동안은 자금 지원 없이 연구를 하거나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셈입니다.”

그는 “연구 용역 대부분은 시작은 늦어도 마감은 지킨다”는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강의실-존립기반의 붕괴



강의실로 자리를 옮긴 그가 털어놓는 학부의 모습은 대학원보다 심각했다.

“물리화학부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커트라인이 간호학과보다 낮습니다. 취업 가능성이 점수를 좌우합니다.”

의대나 한의대 때문에 이공계 지원생이 줄어든다는 것은 지방대로선 사치스러운 고민이다. 의치한(의대 치대 한의대)이 아닌 다른 학과로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지난해 이 학교 물리화학부 신입생은 110명. 1년 뒤 학과를 정하고 보니 66명이 화학과를, 나머지는 물리학과를 선택했다.

“화학과 졸업생은 그나마 국내 화학산업 덕분에 취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물리학과는 외국으로 나가지 않는 한 어렵지요.”

여기에 매년 신입생 20%가 등록금만 내고 휴학을 하는 현실도 그가 부닥쳐야 하는 장벽이다.



연구실-그래도 희망은…



탄소나노튜브 종이를 건네받았던 연구실로 돌아갔다. 이 종이는 김 교수가 대학원생 한 명과 함께 물리학과 실험실에서 만들었다. 직경 10억분의 1m 크기의 관을 종이로 만든 것이다. 휴대전화나 노트북컴퓨터의 전지에 적용할 수 있다. 상용화가 되면 전지 성능을 8∼10배가량 높일 수 있는 획기적인 개발이다. 포항공대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앞서는 기술력이다.

“미국 대학의 연구소 등지에서 견본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많습니다. 국내에서도 관심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탄소나노튜브와 관련한 기술력은 삼성전자와 함께 김 교수팀이 세계적으로도 선두에 있다. 그는 미국에서 탄소나노튜브를 꼬아 섬유를 만든 바 있다. 인간의 근육보다 강도가 100배나 강했다. 탄소나노튜브는 수소자동차의 배터리에도 응용할 수 있다.

“지방대도 각각의 강점들을 갖고 있습니다. 우수 인재들이 아직은 교단을 버리지 않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교수 평가 시스템과 인력 문제가 계속된다면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연구용역 제안서를 제출하면서 지방대이기 때문에 당해야 했던 보이지 않는 차별을 설명했다. 비슷한 제안서라도 이왕이면 수도권 대학이 낙점을 받는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물리학과 같은 기초 학문의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공학에만 집착하는 현실도 넘어야 할 장벽이다.

김 교수는 몇 년 전 해외 과학 관련 잡지에 실렸던 표지 그림을 예로 들었다. 지구와 달을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케이블로 연결해 엘리베이터를 매달아놓은 것이다.

“그런 상상력이 과학 기술을 현실로 만듭니다. 하지만 그 상상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등록일      2004/02/03
정보출처      동아사이언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7 과기 국제화사업에 317억원 투입 VeKNI 2004.02.04 10446
» [과학기술이 희망이다]과학자에게 장애는 없다 VeKNI 2004.02.03 10273
125 2007년까지 이공계 석.박사 일자리 1만개 창출 VeKNI 2004.01.30 10438
124 독 프라운호퍼연구소 한국에 R&D센터 설립 VeKNI 2004.01.30 11029
123 한국 인터넷 이용자 비율 '세계 3위' VeKNI 2004.01.23 10181
122 軍에 `과학기술장교' 제도 도입 추진 VeKNI 2004.01.14 10826
121 박사후 해외연수자 220명 선발 VeKNI 2004.01.14 10321
120 국내 논문표절 행태 자성 목소리 높아 VeKNI 2004.01.06 10208
119 독일 유명 '나노연구센터' 국내 유치 VeKNI 2003.12.30 10295
118 신임 과기부 장관에 오 명 아주대 총장 VeKNI 2003.12.30 10253
117 `입는 마우스'개발 file VeKNI 2003.12.25 10536
116 2003년도 과학계 최고 발견은 암흑에너지 VeKNI 2003.12.25 10476
115 EU 프레임워크 국내 연구진 참여 본격화할듯 VeKNI 2003.12.15 10205
114 교육부재 한국 이공계 VeKNI 2003.12.15 10197
113 한국 IT 세계 점유율 낮아져 VeKNI 2003.12.09 10297
112 '과학기술전문장교제' 도입 추진 VeKNI 2003.12.02 10270
111 과학우대 풍토없인 국가미래 암담 VeKNI 2003.11.28 10227
110 한국, 디지털접근지수 세계 4위로 도약 VeKNI 2003.11.20 10208
109 항우연 김진희박사, '21세기 과학자 2000인' 선정 VeKNI 2003.11.16 11532
108 외국 IT, 한국에 R&D센터 설치 ‘밀물’ VeKNI 2003.11.11 10201
CLOSE